떠나지 않는 불편한 여운. <스토커>를 보고. 읽은것, 본것, 들은것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를 꼭 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우선 <올드보이>를 생각했기 때문인데, 이사람 영화로 <박쥐>나 <친절한 금자씨>도 있었지 하는 생각이 뒤늦게 떠올랐다. 뭐 넷 다 비슷한 박찬욱 표 영화긴 하지만, 불편한 잔상이 남는 건 <박쥐>나 <친절한 금자씨>와 더 유사했다. 왜 그럴까? 아마도 주인공들이 뱀파이어나 금자씨처럼 위험하고도 특이한 존재들인데다, 꼭 의도한 것이 아니더라도 자신 속에 내재된 본질적 속성 때문에 피치 못하게 희생을 불러오게 되기 때문인 듯 하다.

먼저, 어떻게 표현했는가.
박찬욱 감독이 묘사한 미국인들의 이야기. 이건 정말 부조리다. 아주 간단한 장면일지라도 거기에 담겨있는 특정한 전통, 냄새, 색깔, 물건, 장소 등에 미국인만이 가질 수 있는 맥락을 한국인이 표현할 수 있는가? 피상적이고 전형적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고 나는 혹시나 있을지 모를 어설픈 묘사에 상당히 주의를 기울였다. 그런데 오히려 정반대의 방향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전반적으로 의미를 놓칠까 과하게 힘을 썼구나 하는 부자연스러움이랄까. 특정 사물이나 행위에 대한 상징적 의미를 과도하게 부어넣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모든 장면에서 사물과 행동이 자연스럽게 배어나오기 보다는 '책보고(또는 영화보고) 배웠어요'하는 어설픔이 느껴진다. 혹은 나 이정도 할 줄 알지 하는 연출자의 자의식이 비친 것? 어쩌면 원래 박찬욱이 뭐 하나 작은 거라도 그냥 넘기지 않는 게 이런 식으로 느껴진 걸지도 모른다. 하여튼 의식적으로 의미를 과잉시킨 영화. 그래서 보는 내내 불편하다. 거기다 시간의 흐름을 모자이크식으로 짜맞춘 것, 그리고 영상미에 신경 쓴 것도 정도가 과했다. 왜 저렇게 멋을 부렸지?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박찬욱 감독이 그런 경향이 없지 않지만) 상당히 눈에 띄는 플롯의 비약.   

두번째, 무엇을 얘기하는가. 
레거시, 본성, 혈통, 운명.. 이런 것을 얘기하는 거 같다.. 마치 뱀파이어가 뱀파이어임을 자각하고 뱀파이어답게 살아나가야 하는 것처럼. 자기와 동류이자 자신의 정체성을 일깨워 준 삼촌을 죽이면서 비로소 시리얼 킬러 사이코 패스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히 자각한 주인공은 또 그에 걸맞는 삶을 살아나갈 것이다. 결국 키워드는 정체성의 발견이다. 이것은 오프닝에서 그리고 엔딩에서 주인공의 모노로그로 나타난다. 사실 정체성을 다룬 영화는 정말 많고도 많은데, 이렇게 불편한 방식으로 그것을 다루다니. 하여튼 주제는, 그리고 그걸 드러내고 풀어나가는 방식은 마음에 들었다. 플롯 자체도 재미있다. 처음에는 좀 늘어지지만 나중에는 몰입하여 허걱 하고 놀라게 되는 이런저런 반전들도 잘 배치되어 있다. 종잡을 수 없는(관객 입장에서도, 주인공 입장에서도) 시퀀스 속에서 주인공이 과거의 요소들과 조우하면서 예기치 않게 자신의 정체성, 또는 어떤 레거시를 발견하게 되는 전개는 나름 <올드보이>를 닮았다.

세번째, 무엇을 상기시키는가.
어떤 면에서 이 영화는 분명히 성장기적인 부분이 있는데, 이러한 부분이 나에게 일깨워 주는 과거의 기억들이 몇 가지 있다. 엔딩 부분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어른'의 자유와 해방감, 자신감은 요즈음 나의 화두이기도 하다. 한편, 아무래도 상징적 의미가 과잉된 영화이다 보니, 미국적 일상에 대한 낯설게 하기가 넘쳐나는데, 이러한 묘사들은 내가 잊고 있었던, 낯선 외국의 일상이 하나하나 인상적으로 뇌리에 새겨졌던 그 때의 기분과 느낌을 다시 소환했다. 그것이 이어져 오늘은 그 당시 만났던 사람들과 에피소드들, 자질구레한 디테일들이 잔뜩 떠오르고 있다. 

앞으로는 박찬욱 감독 영화를 별로 보고 싶지 않을 것 같다. 무엇보다 보고 즐겁지가 않다. 아마 이 영화는 그리 히트치지는 못할 것 같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올드보이>보다는 좀 덜 꽉 찬 느낌이다. 줄거리든, 비주얼이든, 사실 그다지 강렬하지 않다. 다만 끊임없이 불편, 불편할 뿐. 역시 극적인 서사 방식과 타고난 문화적 맥락 사이에는 떼기 어려운 어떤 관계가 존재하는 듯하다. 비슷한 얘기를 쿠엔틴 타란티노 같은 감독이 풀었다면 좀 더 자연스럽게 와 닿았을 듯. 혹은, 박찬욱 감독이 한국을 배경으로 이 이야기를 만들었다면 더 강렬했을 지도.      

아, 마지막으로, 정말 미아 바시콥스카(주인공)는 배두나하고 너무 닮아서 몰입이 안될 지경이었다!!